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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남은 날짜를 세어보던 어느 날, 내가 어영부영하는 사이 시간이 휘리릭 지나갔다고 투덜대자 어머니가 말했다.
“너 때는 시간이 시속 50㎞ 정도로 가겠지만, 80 넘어봐라. 시속 80㎞로 달려간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데에는 도파민 분비 감소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가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탓도 크다. 나이 들수록 반복적 일상과 습관적 행동이 늘어나는 반면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일이 줄어드니 시간이 빨리 간 듯 느끼는 것이다. 관찰하는 감각이 무뎌지고 주의비트컴퓨터 주식
를 기울이는 대상이 줄어든 탓에, 돌아보면 어느새 시간은 저만큼 달아나 있다.
시간의 가속도를 느낄 때면 괜한 조바심이 인다. 인생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도록 맥없이 내버려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들 때 종종 아무 쪽이나 들춰 보는 책이 ‘달콤한 소금’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프랑수아즈 에리티에가 80대에 쓴 이 책은황금성동영상
감각의 촉수를 다듬고 벼려내어 인생의 풍미를 놓치지 말라고 권하는 산문시와도 같다.



달콤한 소금 l 프랑수아즈 에리티에 지음, 길혜연 옮김, 뮤진트리(2013)


그는 30년째 자신의 주치의인 의사가 휴가지에서 보낸신천지무료
엽서에 일주일의 시간을 “훔쳐냈다”라고 쓴 표현에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 시간을 훔쳐냈다는 건 바쁜 일상에서 간신히 휴가 갈 시간을 빼내었다는 뜻이겠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가 “잡아먹을 듯 덤벼드는 주변 사람들, 강박적인 일, 막중한 책임감 따위로 세상이 자신의 삶을 빼앗아 가도록 내버려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치의에게 “인생의 개미주식
감칠맛”을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을 전하려 답장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 책으로 이어졌다.
본문이 80쪽에 불과한 이 짧은 책에는 인생이라는 요리의 주재료라 할 만한 저자의 본업이나 지적인 생활, 사회적 참여, 사랑, 섹스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이 책의 주제는 그런 게 아니다. 책에는 인생의 주재료에 뿌려져 맛을 내는 소소한 양념들, 대형주
즉 작은 기쁨, 자잘한 추억, 낙담, 내면의 떨림에 대한 나열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폭소, 거센 바람이 부는 날 해안도로 지나가기, 누군가를 어떻게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느라 머리를 짜내는 일, 맨발로 걷기, 둘이 서로 팔이나 손을 잡는 것, 공처럼 몸을 웅크리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쳐다보기, 숨차게 뛰어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 잘난 척하는 사람 모르는 척하기, 낯선 곳에서 잠 깨기, 입에 발린 말에 둔감하기, 물을 주면서 화초와 말하기, 필요한 경우 단호하게 반박하기, 침대 속에서 피로에 지친 몸의 무게 느껴보기, 그 누군가에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 거리에서 맡는 갓 구운 크루아상 냄새, 옆 사람이 먹는 음식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기, 누구나 아는 노래 합창으로 부르기….”
처음엔 뭐 이리 사소한 일들을 나열해 놓았나 싶었는데, 읽다 보면 신기하게도 나 자신의 감각이 일깨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게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하고 자각하면서 내 몸에 새겨진 감각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섬광처럼 나 자신의 추억도 두서없이 이어지고 기쁨의 순간, 쓰라린 상처의 기억이 뒤섞인다. 무거운 근심을 날려버린 가벼운 웃음, 사소한 순간에 대한 추억들이 얽히고 연결되어, 마치 살아 있음을 긍정하게 해주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책에 빼곡한 감정의 잡동사니 안에는 우리가 “이미 맛보았고 또 언제나 맛보고 있는 느낌과 감동, 순수한 추억”들이 있다. 저자가 보기엔 이것이 “인생의 감칠맛”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볼 때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고 흥미진진”해진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탐지기를 갖춘 하나의 세포 조직”이다. 우리가 겪은 사건은 잊혀도 “그 본질은 남아 육신에 새겨지고 회상의 은밀한 매력으로, 느낌의 전율로, 놀랍도록 생생해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감동의 힘으로 되살아”난다. 몸에 새겨진 감각적 기억은 언제나 말을 하고 ‘나’라는 사람의 취향을 형성한다.
언젠가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모임에서 자신의 직업이나 관계, 역할을 다 빼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체로 각자의 취향, 선호하는 취미, 잊지 못할 경험으로 소개의 내용이 수렴되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고민해서 선택하고 도전하며 행동한 것들 못지않게 무엇을 좋아하면서 어떤 순간에 감동하고 전율했거나 자극받고 일렁였던 감정의 파동 역시 지금의 ‘나’를 형성한다. 그렇게 “우리를 형성하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시켜 줄 감정의 토양”을 깨닫고, 자신의 경험에 민감해지도록 돕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또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데 일상의 사소한 순간, 작은 떨림이 뭐 중요하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알고 이해해서 머릿속에 정돈하기 이전에 “우리의 감각을 통해” 존재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보고 관찰하고 듣고 느끼는 그 모든 창조적 감각을 잘 간직하지 않으면 과로에 시달리다 겨우 소비자로서만 순간의 기쁨을 경험하거나, 세상에 둔감해진 채 시간의 흐름만 탓하며 늙어가게 될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살아서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에는 일을 넘어서, 심각한 느낌을 넘어서, 정치 활동이나 모든 질서를 넘어서는 어떤 가벼움과 축복의 모습”이 있고, “이 약간의 보너스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삶의 소금이 팍팍한 삶을 바꿔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가끔은 ‘살맛 나는’ 순간을 갖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김희경 작가·전 여성가족부 차관


작가·전 여성가족부 차관



“살아서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에는 일을 넘어서, 심각한 느낌을 넘어서, 정치 활동이나 모든 질서를 넘어서는 어떤 가벼움과 축복의 모습”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